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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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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글레미 댓글 0건 조회 7,238회 작성일 14-07-0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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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현장, 진도 체육관과 팽목항을 다녀와서....

                                    송필교 아브라함, 박미경 스텔라, 심정화 율리안나, 정화영 데레사 수녀

   

   

세월호 참사 80여일이 지나고 있다!

아직도 실종자 11명을 찾지 못했고, 지금은 태풍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수색에 아무런 성과 없이 시간만 보낼 것 같다는 불안감이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하고 있을 것 같고
그곳을 다녀 온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고 하고 있다.

어느 노 사제가 팽목항 방파제 위의 매달려 있는 남현철 안토니오의 기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기도하신 장면을 기억해 본다.  사람들의 기억은 희미해지거나 사라져 간다.
그러나 아주 기쁘거나 아주 슬픈 기억들은 오래 간직하게 마련이다.
세월호 사건이 그렇다
우리에게 세월호 사건은 잊고 싶지 않은, 잊혀 져서는 안 될 사건이다.
우리는 세월호에 탄  300여 명이 거대한 선박 안에 갇힌 상태로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다. 행여나 '살아서 돌아오리라' 믿었던 실낱같은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그렇게 검은 바다는 아이들과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장상연합회의 결정에 따라 우리 수도회의 차례이기 때문에 진도와 팽목항에 가야 한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의 마음은 두 갈래였다. 그 곳에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과  다른 하나는 5박 6일이라는 시간을  내어 놓아야 하는 부담감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 부담감은 오히려 ‘ 이곳에 오길 참  잘 했다.’ 라는 감사함으로 우리를 바꾸어 놓았다.  그 곳에서 우리는 유가족을 만나 손을 잡아 주지도 않았고, 그 분들을 눈으로 보고 따뜻하게 위로와 포옹을 나누지도 못했다. 단지 유가족이 있는 체육관을 슬쩍 훔쳐보며 기도하는 것과 유가족이 머무는 숙소를 지나치며 화살기도를 드리는 것 밖에는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존재 자체로 진도 체육관 그 뜨거운 천막에서,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노란 리본과 숨져간 아이들이 아끼던 물건들과 음식들만이 놓여 있는 팽목항 그 곳에서, 그저 기도하는 것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없었기에, 이 시대에 수도자로서 우리 존재의 본질인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재확인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세월호에서 건져 올린 시신들을 가족들이 보기 전에  시신을 수습하는 봉사를 맡은
광주교구 상장례 봉사자들의 체험을 공유하며 다시 한번 슬픔과 분노, 미안함을 느꼈다.
처음 시신 30구에서 170구 까지 수습할 때,  단원고 학생들의 대부분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고 하셨다. 이는 곧 그들이 배에서 나오기만 했어도 살 수 있었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하셨다고 그리고는 이내 눈시울을 적시셨다. 대부분의 학생들의 얼굴은 그냥 잠자고 있는 평온한 얼굴이었다고 ... 금방이라도  누구야 라고 부르면, 잠에서 부시시 일어 날 것 같은 모습이었다고 하시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 순간 말 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아직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한 그 아이들의 희생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길 없어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께 수 없이 질문을 했었다. 그리고 더 간절하게, 생생하게 기도할 수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 종일 기도하여도 피곤함을 몰랐고, 시간이 조금씩 흘러 갈수록
우리가 머무는 동안,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11명 중 단 한 명이라도 돌아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주님께 청하였다.

그러나  그 바람은 마지막 날까지 들어 주시지 않으셨지만, 우리 각자는 더 많은 은총들을 체험했다.  우리들의  각자 삶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자원봉사자들을 통하여 서로 다른 회심이 일어났다는 것을 마지막 날 나눔을 통해 알 수 있었다 . 그동안 수많은 피정 안에서 일어 난 회심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말이다.

또 한 가지! 우리들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다면 진도, 진길 본당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신자들이었다. 80여일 동안 휴일도 없이 휴가까지 반납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곳에서 봉사하고 찾아오는 봉사자들을 반겨주시고 회의를 통해  한 자리에 모아주시고 우리가 하는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해 주셨던 그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곳에서 돌고 있는 수많은 의혹들과 이야기들이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사건' 유족들이 처음 "국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메시지를 발표했을 때, 그 핵심내용은 이 사건의 객관적이고 실체적인 진실을 밝혀내는데 더 관심과 응원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4월29일 기자회견에서는 ’유족들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시지 말라는 것과 무능한 현 정권에게 '공권'으로서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또 5월 기자 회견에서 ‘아이들이 하늘에서나마 다 같이 활짝 웃을 수 있도록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 하였다. 이 가족들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기도 하다.

끝으로
세월호 침몰 당일인 16일 오전 8시 52분 휴대전화로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 한다'고 최초로 신고한 최덕하군과 세월호안에서 배가 침몰하는 위기의 순간에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도, 다른 친구들을 더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정차웅,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도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서로 챙기며 검은 바다 안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우리의 아이들, 아직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5명의 아이들과 6명의 실종자들, 특히  팽목항 방파제의 묶여 있는 기타의 주인공 남 현철 안토니오가 빨리 돌아오기를... 속 썩이고 맘 졸이게 했던 제자들과 함께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도 제자들의 손을 놓지 않았던 13명의 선생님들을 오래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 그들을  당신 품에 받아 주시고,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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