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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스쿨 | 영상) 안나스쿨에서 고 이일훈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수녀님들의 추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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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프라니 작성일2021-08-01 조회1,2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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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스쿨에서도 선생님을 추모하는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아름다운 건축가 이일훈 선생님을 오래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숭의동 성당에서 있었던 이일훈 선생님의 장례미사때 김준희 수녀님, 황수산나 수녀님이 참석해주셨습니다. 

그 때 하셨던 김영욱 신부님의 강론내용을 담았습니다. 

이일훈 선생님에 관한 일화가 담겨 있어 참 감동을 줍니다.








<장례미사 때 한국 순교복자 성직 수도회의 양운기 수사님의 추도사>



이일훈(토마스) 선생님.


 이일훈 선생님, 그렇게 건강하고 활발하고 거침없던 선생님께서 왜 이렇게 누워계십니까? 지난 3년 반 동안 선생님은 숭의동 성당 교우들과 함께 땀과 정성과 의지와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이 성당 축성식을 마쳤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건축과정에서 교우들의 정성과 기대를 새겨들으면서 교우들의 사정을 살피고 건축의 의미와 건축과정을 설명하고 교우들과 소통하는 정성으로 4월 10일 축성식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조건과 사정을 살피면서 작업을 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그게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선생님과 함께 오랫동안 건축 작업을 해왔던 저는 잘 압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그런 어려운 과정을 수도자처럼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전문가의 시각으로 조언하고 때로는 교우들의 조건을 경청하면서 작업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3개월 만에 이렇게 이런 모습으로 이 자리에 계십니까? 선생님만 아는 어떤 작업이 더 남아있어서 이렇게 오신 것입니까?

 

 4월 10일 이 성당 축성식을 마치고 그동안 수고한 관계자들과 대포 한 잔 하는 자리에서 가까이 뵌 선생님의 모습은 매우 수척해 보였습니다. 2년 여의 성당 신축작업에 집중하느라 휴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하면서 그동안 노력에 서로 위로와 담소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한 달이 조금 지난 5월 13일 새로운 건축설계를 상의하려고 전화를 올렸습니다. 노동자의 쉼터 설계를 부탁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벌써 25년이 되었습니다만 1997년 말 IMF외환위기 때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때 선생님의 건축사무소는 오히려 일자리를 늘렸던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당시 선생님의 건축사무소는 고집스럽게 직원을 늘렸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다른 건축사무소에서 해고시키더라도 난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일자리를 늘리고 다른 건축사무소에서 해고된 직원들을 채용했던 선생님의 건축사무소는 결국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저는 노동자 쉼터를 설계하는 일을 선생님이 맡아주시면 좋은 쉼터가 탄생될 것이라는 생각에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해고를 그렇게 막으려고 했던 그 손으로 “노동자 쉼터”를 설계한다면 그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전화 통화를 한 것이 5월 13일입니다.


 선생님은 제가 통화하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셨을 것입니다. 저 쪽 전화에서 들리는 선생님은 “참 좋은 일이군요. 그런데 수사님 나 지금 아파요. 병원 다녀오고 설계내용을 상의합시다.” “왜요? 무슨 일이죠?” “어휴, 병원에 갔더니 폐암 말기라고 하네요.” 저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는 순간 “수사님, 그동안 너무 잘못 살았어요.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식구들에게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이제 돌아보니 큰 잘못을 했어요.” 저는 갑자기 듣는 소식에 “멍”한 했습니다. 그런데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선생님의 가느다란 울음소리였습니다. 

 

 이일훈 선생님, 저는 오랫동안 선생님과 지내오면서 선생님의 가느다란 울음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렇게 당당하고 거침없던 선생님의 가늘게 떨리는 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으로 가셨던 선생님!! 왜 이렇게 아무런 대답 없이 누워계십니까? 그동안 선생님께서 하고 싶은 대로 살아서 가족들에게 책임을 다 못 하셨다면 벌떡 일어나서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이렇게 힘없이 누워있단 말입니까?    

 선생님 어느 날 약주 한 잔 하는 대폿집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보다 행복한 건축가 있다면 나와 봐라. 내가 작업한 건축에서는 사람들이 기도한다. 내가 작업한 건축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고 성찰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내가 작업한 건축에서는 사람답게 살아가려고 고뇌하는 깨어있는 수사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난 최고로 행복한 건축가”라는 뿌듯함과 자신만의 보람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수도회 건축 대부분은 선생님의 설계 작업이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저는 그 말을 들을 때 쥐구멍이라고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저는 반성도, 성찰도, 기도도 잘 못하고 그냥저냥 허겁지겁 하루하루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그 말씀을 저는 거꾸로 알아들었습니다. 그것은 반성하고 성찰하고 수도생활 열심히 하라는 훈계이고 경고였기 때문입니다. 


 이일훈 선생님, 우리 수도회 수사들은 선생님께서 작업하신 여러 건축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수도회 본부, 병원과 성당, 제주도 수도원과 성당, 피정의 집, 자비의 침묵 수도원, 장애인 시설 나루터와 수도원 등, 제가 인사이동으로 생활공간을 옮기면 옮긴 곳 역시 선생님께서 설계하신 건축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처럼 우리 수사들을 선생님의 건축철학 안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어서 선생님의 건축이 수사들을 교육하고 양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나보다 행복한 건축가 있다면 나와 봐”하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제 친구에게는 반말로 “이보게, 저보게 아무개 아우”라고 하면서 저에게는 절대 말씀을 내려놓지 않고 존대를 하셨습니다. 수도자들에게는 반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고 한참 젊은 수사들에게도 깍듯한 존대를 하셨습니다. 그럴 때 마다 저는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수도생활 제대로 하라는 경고였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그러나 선생님께서 작업하신 건축 안에 살고 있는 우리 수사들이 선생님의 기대처럼, 진정 성찰하고 반성하고 고뇌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존대 받을 만큼 존재를 고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새벽에 허겁지겁 일어나 졸면서 기도하기가 바쁘기만 합니다. 

 이일훈 선생님, 이제 저 다른 공간으로 가셔서 선생님이 추구하는 “지벽간”이라는 공간을 만나게 되어 행복하십니까? 이제 저 언덕 너머로 가셔서 “채나눔 건축철학”을 계속 하시렵니까? 그곳에 가시면 혼자계신 노모에게는 누가 매일저녁 6시 문안 전화를 하란 말입니까? 여기 숭의동성당 교우들과 김영욱 신부님, 보좌신부님의 황당함은 보이지 않습니까? 기차길옆 공부방 아이들의 놀란 눈동자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일훈 선생님, 그렇게 스스로를 “행복한 건축가”라고 하시면서 왜 이렇게 빨리 서둘러 가십니까? 무엇이 그리 선생님을 빨리 떠나게 한단 말입니까? 먼저가신 스승 김중업 선생님을 만나고 싶은 것입니까? 아니면 좋아하던 선배 정기용 선생에게 할 말이라도 있단 말입니까? 아니면 건축가 이일훈을 엉엉 울게 했던 롱샹성당의 르코르뷔지에를 만나고 싶은 것입니까? 아니면 바르셀로나에 가서 건축가 이일훈을 왜소하게 했던 “안토니오 가우디”(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열정을 만나고 싶은 것입니까? 병원 갔다 와서 “노동자 쉼터 설계 작업”을 상의하겠다는 약속은 어찌 할 것입니까? 황망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있는 벗들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지난 5월 13일 가늘게 흐느끼던 선생님과 대화를 마치고 오늘까지 믿기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련한 상념들이 스쳐갔습니다. 선생님과 건축적 대화를 했던 30여년의 시간들이 그림처럼 펼쳐졌습니다. 거기에는 열정이 있었고 삶의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절제하듯 내뱉는 말마디들은 깊은 사색의 흔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고뇌가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교회학문에서 배우지 못한 삶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저에게 양수사님도 누구 못지않은 건축가라고 저를 “건축가”로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건축에 대하여 어디 가서 충분히 사기를 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저를 건축가라고 승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저는 선생님을 보내고 나면 수도원 성당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건축가 이일훈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고 말해야 하는 무거움을 감당해야 합니다. 수도원 성당에 들어가면 어제와 다르게 성당이 보일 것 같습니다. 졸면서 기도하다가 문득 떠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상념들이 스쳐갈 것입니다. 그리고 문득 선생님께서 경고하신 말씀이 떠오를 것입니다. 


 “나보다 행복한 건축가 있다면 나와 봐라. 내가 작업한 건축에서는 사람들이 기도한다. 내가 작업한 건축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고 성찰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내가 작업한 건축에서는 사람답게 살아가려고 고뇌하는 깨어있는 수사들이 살고 있다.” 

 선생님의 경고의 말씀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가슴에 새기고 살겠습니다. 선생님과 보낸 지난 시간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2021, 7월 5일. 양운기 작별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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