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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 예수 성심 성월의 초입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쭘립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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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한바오로 작성일2019-06-07 조회3,56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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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올 소화데레사 관구장 수녀님과 수녀회 가족분들, 그리고 선교지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시는 모든 분들께.

  안녕하세요, 저는 사목 실습차 캄보디아로 파견되어 안나스쿨에서 봉사하고 있는 대전교구 우수한 바오로 신학생입니다. 지난 3.1절에 한국을 떠나와 프놈펜에서 언어 연수를 마치고, 4월 초하루에 이곳 푸르사트에 도착해 지내고 있습니다. 첫인사치고는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죄송한 마음을 꺼내 보이며 이야길 시작해봅니다.


  한국 본당을 떠나와 파견지에 머물게 되면서 심중에 여러 다짐을 가졌는데, 그중 하나는 '인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정된 시간과 낯선 공간 안에서, 말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이 사람들과 지내기 위해 저는 철저히 '집중'을 택했습니다.

  물론 그만큼 외롭고, 힘들고, 막막했지만, 그 어려움을 풀려고 한국에서의 인연들에 기댄다면 안되지 싶었어요. 그래서 연락도 잘 하지 않고, 흔한 사진 한 장 누리소통망(SNS)에 올리질 않았습니다. 이제 와 보면 별 부질없을 수도 있는 저만의 '집중'이, 본당이나 학교 공동체에도 한 통 전하지 않던 소식을 이곳에 전하는 걸 망설이게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덧 이곳에서 석 달을 보내며 제가 체험하고 느낀 바들을 조금은 꺼내 보아도 좋지 않겠냐는 권유를 듣고는,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슬슬 더워져 가는 날씨에 모두 건강하신지요?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캄보디아는 여러 면에서 발전 가도에 올라있는 나라입니다. 그 때문에 이미 상당한 발전을 이룩한 한국에서의 생활과 비교한다면, 조금은 답답하고 불편한 점들이 있습니다. 사실, 무척 많습니다.

  살라면 못 살 것도 없겠지만, 마냥 감내하기엔 또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습니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전력난이 시작되어 매일 계획 정전이 이뤄지더니, 이내 물도 끊겼습니다. 머물던 숙소에 미리 받아둔 물도 없었던 터라, 먹다 남은 생수병 하나에 의지해 겨우 씻었던 기억이 납니다. 음용수는 고사하고 씻는 물도 깨끗하지 못하고 모자란 건 다반사, 어디를 가나 벌레 천지고, 이 모든 어려움을 가볍게 제치는 불볕더위가 있습니다. 더욱이 수도 프놈펜에 비하면 여러 사회기반시설이 부족한 푸르사트에서 살아가시는 수녀님들을 처음 뵈었을 때, '어떻게 살고 계신 거지? 참 대단하시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제가 푸르사트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작은 뺑소니 사고를 당해 몸져눕고 한국에 돌아가느니 마느니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김 마리아도미니카 분원장 수녀님과 다른 수녀님들의 정성 어린 간호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지금쯤은 한국의 병원에서 이 한때의 추억을 곱씹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마냥 앓는 제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는데, 그런 저에게 사람마다 겪는 어려움은 다 다른 것이라며 위로를 건네주시던 곽 프랑소와즈 수녀님의 손이 참으로 크게도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같이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결코 수녀님들이 대단한 분들만은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안나스쿨의 신축과 얼마 전 대대적인 이사라는 대업 앞에서 수녀님들은 누구보다도 강한 분들이셨지만, 그만큼 많은 아픔과 한숨을 끌어안고 계셔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고작 사나흘도 쉬어갈 틈이 없으신 분들이십니다. 당장 이번 주에는 안나스쿨과 마을 공부방 학생들의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고, 이후로도 여러 손님분들의 방문과 함께 오는 7월 26일 안나스쿨의 축복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옛 성당 부지에 머무르고 있는 유치원은 구 안나 센터의 정비가 완료되는 대로 다시 짐을 꾸려 터전을 옮겨야 하는 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이곳의 많은 친구들이 수녀님과 한 번을 만나고 또 사랑을 나누어 받고 싶어 합니다.


  수녀님들이 대단하신 분들이라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지내셨음에도, 아침 일곱 시면 땅을 후끈하게 태워버리는 불볕더위에 여전히 힘들어하시는 분들입니다. 어려움을 느끼고, 힘듦 안에 계신 본인들의 모습을 바로 보고 계시기에, 그만큼의 희생과 헌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나아가려 기도하시는 모습을 매일 봅니다.

  이사를 하고, 손님을 맞이해 행사를 치른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수녀님들은 늘 한 시간 일찍, 동이 트기도 전에 경당에 모여 기도를 하십니다. 몸이 아파 수액을 맞으시면서도 아침이면 유치원까지 한참을 걸어가시는 수녀님의 뒷모습, 얼굴이 뜯어져 피딱지가 앉아있어도 잠시를 쉬지 못하시고 스쿨에서, 주방에서, 시장에서, 또 전화상으로 한국에서 끊임없이 일하시는 수녀님의 옆모습을 보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일들을 잠시 멈추고 다 함께 모여앉는 식탁 앞에선 언제 힘들었냐는 듯 환한 웃음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아이들을 만나 제가 배우고 익혀왔던 경험을 전하고, 사무실에서 몇 가지 작은 소임을 받아서 해낼 때면 참 즐겁고 기쁩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면서도 어려움 또한 넘어왔던 지난 시간 안에서의 여러 경험 모두가 그다음 시간을 위한 준비였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쁨과 깨달음 이상으로, 이 대단하지 않으신 수녀님들과 함께하는 매일의 여정이 참 저를 설레게 합니다. 저는 아직 이겨내고 있지 못한 여러 삶의 어려움을 기꺼이 봉헌하시며 각자의 사도직 안에서 하루를 충만히 살아가시는 수녀님들을 근거리에서 보고 배울 수 있어서, 매일이 어려우면서도 참 행복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아 친교를 이루며 모여 살았던 초대 교회 공동체가 마치 이와 같지 않았을까요.

  해보고픈 것도, 시도해보고픈 것도 이래저래 많은 청년은 오늘도 생각합니다. 제가 떠난 후에 지금의 일이 지속될 수 있을까, 가뜩이나 일 많은 안나스쿨에 새로운 일을 벌여놓고만 가는 건 아닐까. 저의 순간적인 만족과 허영을 위해, 겉보기에만 좋은 모습을 남기기 위해 일하지 말자고 계속 식별합니다. 그런 제게 오늘도 프랑소와즈 수녀님은 말씀해주세요. "학사님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하늘에 마련하신 영원한 행복에로 사람들을 이끌어 가시기 위해" 일하시는 하느님께서 또한 수녀님들과 우리 아이들에게, 오늘 아침 꿈에서 깨기 전에 따뜻하게 한 마디 건네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뿐만 아니라 하루를 제대로 쉬지도 못하시고 어제도 오늘도 버티고 또 참아내며 앓고 계신 수녀님들에게 특별히 건강의 은총을 허락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한국과 여러 선교 지역에서의 수녀님들께도 그런 하느님의 축복이 전해지기를 기도하며, 부족한 글을 맺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간결한 글로 이 공간을 다시 찾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


2019년 주님 승천 대축일에.
수한 바오로 전합니다.




덧. 간단한 사진 설명입니다.

사진 1. 2019년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후 Kampong Luong 신자들과 함께

사진 2. 5월 셋째 주 안나스쿨로의 이사 현장. 모두들 일주일을 넘게 고생했답니다.

사진 3-5. 5월 20일 Tangkok 성당에서의 순교자 현양대회 후 학생들과 함께

사진 6-8. 안나스쿨로의 이사 후 밝고 깨끗한 환경에서 지내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 9. 안나스쿨에는 귀여운 고양이도 살고 있답니다- 만나보러 오세요!

댓글목록

엠마오 소화님의 댓글

엠마오 소화 작성일

바오로 학사님!!
오늘 이글 읽으면서 '교육회 수한 리포터'가 더 어울리는 듯 하네요^^
곳곳을 섬세하게...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시고, 큰 사랑을 꿈구며... 나누며...
현장에서 함께하는 모습들에 감동입니다.
선교사 수녀님들의 손발이 되어 주시고, 생생한 현장을 글로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무시는 동안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들이 기쁨이고 늘 축복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