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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스쿨 | 7월 26일, 안나스쿨 축복식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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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한바오로 작성일2019-07-28 조회3,846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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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았습니다.

  평소라면 점심 이후 두어 시는 되어야 아이들이 오는데, 오늘은 아침 여섯 시부터 운동장이 시끌벅적합니다. 가까운 오바끄롱껀달 마을에서부터 저 먼 붜웡초등학교에서까지, 각 마을 공부방 아이들이 안나스쿨에 모였습니다. 오늘을 위해 맞추어둔 옷으로 갈아입은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놀기 시작합니다.

  한쪽에서는 연이어 도착하시는 손님들 맞이로 분주합니다. 전날 도착하신 관구장 수녀님과 참사 수녀님, 올마이키즈 김영욱 요셉 이사장 신부님과 박영대 상임이사님, 대구대교구 정영훈 바오로 신부님과 휴가 중임에도 아이들을 위해 보름 만에 다시 찾아주신 이지운 시몬 신부님까지 한국에서부터 귀한 손님들이 많이 와 주셨습니다. 물론 벌써 캄보디아 노랫말을 익혀 성가대에서 함께 전례 준비를 도와주는 인천교구 숭의동성당 교사분들과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저희의 소중한 친구입니다. 또 오늘 축복식 미사를 집전해주시는 키케 주교님과 바탐방, 프놈펜 교구 각지에서 사목하시는 선교사 신부님, 수녀님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이 축복식 자리를 무척 빛내주셨습니다.


  이날이 오기까지 많은 노력과 봉헌이 있었습니다.

  처음 캄보디아에 들어와 어떠한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생명을 나눌 수 있을까 기도하며 식별하던 진출 초기부터, 바탐방 교구와의 논의를 거쳐 이곳 뽀삿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배움을 전하고자 방 한 칸을 빌려 성 안나 교육센터를 시작했던 2013년 10월, 또 올마이키즈와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비롯해 한국의 여러 은인 및 후원자들께서 힘과 정성을 모아주신 덕에 800여 명의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로 성장해 온 지난 6년, 그리고 캄보디아 사도직의 시작부터 안나스쿨 신축에 이르기까지 기도 안에서 함께 해주시고 응원해주셨던 본원과 모원 수녀님들의 영원한 동반까지, 어느 시간 하나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축복식을 맞이하며 제게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당일 아침이었습니다. 아침 기도를 마치고 새벽같이 나오시어 행사 전반을 점검하시고는 사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으신 수녀님께서 평온한 표정으로 기도하시던 행사 한 시간 전을, 오래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다섯 명의 교사들과 안나스쿨 학생들, 봉사자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이날을 기다려왔습니다. 하지만 그 준비가 마냥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축복식이 다가올수록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해, 사람은 없으나 일만 늘어가는 상황 안에서 때론 서로가 서로에게 속상함과 서운함을 남겨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간 모두를 주님께 봉헌하며 이제는 그저 사람들을 기쁘게 맞이하자는 수녀님의 말씀이 그간의 고생을 모두 잊게 하였습니다. 수녀님 말씀대로 아이들이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언제 또 볼 수 있겠습니까. 눈에 담고 마음에 그려 간직하기도 바쁜걸요.


  지난 19일의 (캄보디아 내빈들을 위한) 축복식을 마치고는 긴급회의를 열어 각 마을에서 예정보다 많은 친구를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성녀 안나 기념일에 맞추어 이 26일 축복식을 준비하고 또 각 학교와 마을에 협조도 구해둔 상황이었지만 행사 당일 유치원 졸업식부터 각 학년 정기고사(시험)까지, 지역 학교의 일정이 연달아 겹쳐 정작 행사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많이 오지 못할까 염려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각 마을로 보냈던 차들이 꽉 차서 돌아오기 시작했고 예상을 뛰어넘는 350여 명의 아이들이 이 축제에 함께했습니다. 프놈펜과 바탐방 교구에서 오신 캄보디아 신부님, 수녀님들과 숭의동성당 친구들을 포함해 한국에서 오신 내빈 여러분들을 모두 합하면 근 500명이 함께한 오늘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넓은 운동장 한쪽이 비어 보이는 건 왜였을까요. 시험 등의 사정으로 800여 명의 마을 공부방 아이들 모두가 올 수 없었음에 못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 큰 행사를 무척 기쁘게 치러내었으니 누구라도 한숨 돌릴법도 한데, 아니 한 일주일쯤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두 손 두 발 놓아버려도 모두가 '그래, 푹 쉬어라'하고 격려해줄 텐데, 우리 수녀님들은 다시 내일을 꿈꾸십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마을 공부방 아이들을 모두 운동장에 불러모아 운동회를 겸한 축제를 열어볼까, 연극도 하고 함께 영상도 보고 밥도 같이 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 한 꼭지, 올마이키즈에서 후원하는 아동들에게도 문화 체험 등 여행의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꿈, 특히 이번 축복식 준비에 큰 힘이 되어준 12학년 학생들의 졸업을 앞두고 안나스쿨을 수료했다는 증표를 마련해주는 건 어떠할까 싶은 고민 하나, 물론 당장 내일부터 숭의동 성당 친구들과 함께 보낼 일주일에 대한 점검까지, 연달아 이야기하시는데 하나같이 공감이 되고 벌써 설레는 일들이었습니다. 수녀님들의 고운 두 손은 제 할 일을 마치고 조금은 기운 없는 모양으로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지만, 손님들을 떠나보내고 모여앉은 저녁 시간에 이 이야기들을 해주시는 눈빛만큼은 무척이나 밝게 빛나셨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이제까지와 같이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사랑, 그리고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500여 명의 사람이 빠져나간 이 밤의 안나스쿨 건물이 제게는 무척 크게 느껴집니다. 내일 아침이면 오늘처럼 다시 북적였으면 하는데, 당분간은 또 예전처럼 돌아가 안나스쿨 학생들만을 맞이하겠지요.

  마을 공부방 아이들도 꼭 다시 오고 싶다고, 우리가 만나러 가는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닌 다른 날에 멀리서라도 자전거를 타고 오겠다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습니다. 우리가 그 아이들을 매일같이 이곳에서 지내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모여든 아이들이 안나스쿨에 와서 만큼은 하루 한 끼라도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가길 바랍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열다섯, 열여섯 살의 제 나이로 보이도록 키도 조금은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열심히 배우고 익혀 사회로 나간 우리 학생들이 다시 자기 아들 딸들을 안나스쿨로 보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서의 인연과 기억이 좋은 자산이 되어서, 이 나라를 더 아름답게 가꾸어나갔으면 합니다.


  기억해주세요. 많이 도와주세요. 그리고 느껴주세요.

  우리가 모든 일을 할 수 없기에 현지에서 교사와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이 중요하고, 그래서 지금 안나스쿨을 도와주는 교사들이야말로 참으로 귀한 보물이라 하신 관구장 수녀님의 말씀이 참 와닿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녀님들과 교사 다섯이서 꾸려나가기엔 참 많은 것이 부족합니다. 이 공간을 아이들의 웃음과 사랑으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함께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축복식을 떠나보내며 기억하고 싶은 분들도, 나누고 싶은 순간들도 많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저희의 일상을 나누러 다시 이 공간을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2019년 7월 26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그리고 안나스쿨의 축복식이 있었던 귀한 날을 기억하며.


  수한 바오로 전합니다.

댓글목록

모란님의 댓글

모란 작성일

안나스쿨 축복식을 함께 기뻐합니다.
수고하셨어요
지역의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힘찬 발걸음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침바다님의 댓글

아침바다 작성일

수녀님들과 선생님들 봉사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 크고 놀랍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이의 보금자리가 마련되어 기쁨니다.
캄보디아에서 하느님의 사랑의 씨가 많은 열매를 맺기를 기도합니다.

배카타님의 댓글

배카타 작성일

학사님~
학사님이 적은 글을 보니까 축복식이 되게 새롭게 생각되요 :)
역시~~우수하시군요!ㅋ

한줄기비(一雨)님의 댓글

한줄기비(一雨) 작성일

하느님, 감사합니다.
준비하신 수녀님들, 선생님들, 봉사자분들,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