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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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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교 댓글 1건 조회 6,106회 작성일 09-10-1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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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동반자 개별 성지순례기>

아침 수업을 마치고 전날 발생한 자동차 피접촉사고의 결과를 점검하기 위해 차를 운전하여 대구시 북구 노원동에 위치한 자동차 서비스 센터로 향했다. 자동차를 맡기고 10시 30분에 성지순례를 시작하였다.

목적지로 정한 관덕정에서 1시간 정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에서 버스를 내릴 목적으로 시내방향으로 갈 거라고 생각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인근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안내판을 보고 시내 방향으로 향한다고 생각되는 ‘북구3’이라는 번호를 가진 버스에 탑승하였다. 버스에는 서너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버스는 몇 정류장을 거치더니 금호강을 건너가는 것이 아닌가. 시내방향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반대방향으로 간 것이다. 그리하여 버스는 종점이자 반환점인 노곡동으로 갔다. 이 버스를 그냥 타고 있으면 다시 시내방향으로 가는가를 운전기사에게 물으니 그렇단다. 그냥 앉아 있노라니 몇 안 되던 승객이 모두 하차하고 운전사마저 하자하였다. 몇 개의 교회 십자가가 눈에 띈다. 텅 빈 버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오늘의 성지순례를 생각해 보았다.

버스는 다시 출발하여 공터를 돌아 3공단 동네로 들어갔다. 젊은 아낙네 몇이 버스에 올랐다. 그네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양이 즐겁다. 화려하지 아니한 서민들이 사는 동네에서 탄 아낙네들은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간다는 것이 즐거운가 보다. 생활 중에 짜증내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지라 짜증내지 않고 이야기하는 품만 봐도 나의 마음이 가벼워진다.

버스는 공단을 거쳐 북구청 부근 조그마한 번화가를 지나간다. 비교적 높은 건물들과 많은 가게들이 즐비하다. 이전의 동네와는 대조적이다. 이어서 버스는 원대동을 거쳐 달성공원으로 향한다. 달성공원 인근의 분위기는 3공단의 그것과 다소 비슷하다. 각종 공구상들이 즐비하다. 시내로 접어드는 길이라 생각되어 섬유회관 앞에서 버스에서 내렸다. 1시간 걷기에는 너무 가까운 위치에서 내린 것 같다.

길을 돌아 나오니 큰 대리석 건물이 눈에 띈다. 개신교 교회당인가 아니면 개신교 학교인가 싶다. 핸드폰이 울렸다. 받아보니 병원에서 온 전화다. 삶의 현장을 오늘의 성지순례와 단절시키지 않기 위해 전화기를 켜 두었던 터다. 의료분쟁으로 인해 피해자인 환자 측과 합의를 보기 위해 2천만원이 든다는데 그중 천만원을 해당과 의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전해 준다. 빨리 합의를 해야 형사적 사건으로 번진 의료분쟁에서 의사의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 준다.

길 건너 계산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대구의 대표적 성지이다. 감실이 있는 성당을 향해 목례를 하고 길을 가는데 또 핸드폰이 울렸다. 치과병원 행정담당자가 교체된다는데 사실을 내가 미리 알고 있었는지 궁금해 하며 알려줄 겸 수석 치과위생사가 전화를 한 것이다.

사거리 신호등 앞 횡단보도를 건너 적십자병원 방향을 향했다. 관덕정이 적십자병원 뒤에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저께 인터넷으로 관덕정의 여러 모를 살펴본지라 지금껏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관덕정이지만 조금은 익숙한 느낌이다.

적십자병원 옆골목을 올라가니 높게 지어진 관덕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구에 살면서도 한 번도 와보지 않았음에 미안한 감이 엄습해 온다. 옛날에는 여기가 조그만 산 중턱에 있는 연병장이라 하였다. 언덕 중턱에 위치한 관덕정을 보면서 먼저 건물 외부를 둘러보았다. 병원과 상가에 둘러싸인 조그마하고 높다란 정자이다. 무척 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조그마한 언덕에 지어올린 오뚝한 정자, 그것이 觀德停이다. 영어로 Martyrs' Shrine이라고 적혀 있다. 영혼을 모신 곳이라는 뜻인가 보다. 병원 쪽으로 난 입구를 올라가니 이윤일 요한 성인의 영정이 세워져 있다. 성인을 기리기 위한 집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주님을 증거했던 성인의 행적과 삶, 오늘날 이 시간에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하는 삶이다. 죽은 것이 죽은 것이 아니라 이 시간에도 살아있음을 느낀다.

입구를 들어가니 오른쪽에 안내소가 있고 왼쪽에는 계단들이 보인다. 지하층으로 내려가 보았다. 오른 쪽에 성당이라고 쓰여 있다. 감실을 향해 예를 표한 후 왼쪽 방으로 갔다. 방안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그 자체이다. 전등을 어떻게 켜야 하는지 몰라 그냥 조용히 천천히 들어갔다. 신앙의 선조들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살았으리라.

오른쪽에 있는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체조배를 하고 있는 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순교자들의 순교를 허락하신 하느님께서 조용히 계신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던 암울하던 시절에도 오직 주님만을 바라고 믿고 의지할 수 있게 하셨으며 각종 혹독한 형벌도 그것을 방해할 수 없도록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 분이 거기 계신다. 우리의 온 생애를, 오직 그분만을 믿으며 의지할 수 있도록, 그분에 봉헌해야 하겠다.

계단 벽에는 각종 형벌이 그려져 있다. 형벌이 무섭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의 순교 선조들은 그 어느 형벌보다 주님을 향한 마음이 더 강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리라. 지금 나에게 그 가혹한 형벌이 내려진다면 나도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형벌을 달게 받을 수 있을까? 선뜻 자신이 서지 않는다. 특별한 은총이 필요할 것 같다. 계단을 올라가서 대구대교구의 역사를 전시한 방을 지나 정자 주위 회랑을 둘러보았다. 순교자들의 피보다 진한 증거의 삶이 바람 속에 느껴지는 듯하다.

오후 3시에 예정되어 있는 관덕정의 미사는 참여하지 못하고 일터로 돌아왔다. 일과를 마치고 저녁미사를 보러 삼덕성당에 갔다. 나에게는 오늘의 성지순례 기념미사인 셈이다. 오늘도 너무나 자격없는 이 사람에게 당신 몸을 기꺼이 나누어 주시는 그분께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 이 시대에 요구되는 순교자의 삶을 살기 위해 저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고 하시는 것 같다. 말씀을 새기고 모든 것이 당신을 통해서만 의미가 있음을 느끼면서 성당을 나온다.

도심의 한 가운데, 삶의 한 가운데에서, 다양한 일들과 사건을 만나면서 살아가는 한 사람을 돌아본다. 시행착오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했고 공단지역과 번화가를 지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시내를 향해, 아니 대구 감형의 사형장을 향해 나아갔던 여정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광야일까? 자동차 접촉사고, 거꾸로 간 버스, 덩그러니 버스에 혼자 앉아 있었던 시간, 반환점에서 다시 시작한 여정, 의료분쟁, 인사이동 ...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허락하셨고 그 가운데 함께 계시는 주님의 뜻을 알아듣고 행하라는 말씀을 느낀다. 삶의 한 가운데에서 삶의 모든 음영을 받아들이고 희로애락을 모두 포옹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주님의 향기가 되기를 기도한다. -김 루카-

댓글목록

단비님의 댓글

단비 작성일

  + 그리스도의 평화
오늘 뜻깊은 관덕정의 성지순례에 함께 걷는 기분입니다.
고맙습니다. 모든것 안에서 주님이  함께하심을 기뻐하며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