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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의 성지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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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만나 댓글 0건 조회 5,840회 작성일 09-10-2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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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날 때면 늘 가고 싶은 그 곳 성모당을 성지순례의 장소로 정하였다. 나의 일터인 약국에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여 차를 주차시켜두고 걸어 가보기로 하였다. 보슬비도 내리고 해가 없어 걷기에도 참 좋은 날씨였다. 그런데 약국에 들렀다가 가려니 왠지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 아무데나 차를 두고 조용히 걷고 싶었다.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늘 내가 일하는 곳에 일찍 가는 것도 싫었고 내가 얘기치 못한 시간에 들어가면 일하는 이들이 깜짝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언짢았다.. 출발부터... 하지만 약국이 나의 일터이고 그곳에서 도시의 광야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약국에 들러 가기로 하였다.

차를 주차한 다음,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는 직원들을 뒤로 한 채 우산과 비상금만 챙겨서 나섰다. 걷기 시작하는 순간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우산까지 쓰니 더 아늑하고 걷는 걸음이 신이 났다. 그러다 비가 그쳐 우산을 접으니 세상 사람들이 보였다. 많은 차들이 엄청나게 바쁘게 달리고 오토바이들도 횡단보도까지 끼어들어 있었고 모두들 왜 그리 무표정하고 다급해들 보이는지.... 나 혼자만이 여유롭고 즐거운 듯했다.

묵주기도 하면서 걸으려고 묵주는 들고 있었건만 쇼윈도에 걸린 물건들이랑 달리는 차들이랑 지나가는 사람들이랑 모두 신기하고 재미난 것이 많아 묵주기도도 하지 않고 그냥 걷다가 옛날 어릴 적에 살던 동네 앞을 지나게 되었다. 옛날 우리 집이 아직 있나 둘러보고 싶은 마음에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목적지로 가다가 가끔은 옆길도 둘러보는 게 나의 취미가 아닌가... 그냥 발이 그 쪽으로 가 버렸다. 그렇게 매일 다니던 구멍가게는 흔적조차 찾지 못했으나 옛날 살던 그 한옥은 그대로 있었다. 길도 집도 참 작고 아담하게 느껴졌다. 철 대문위 옥상장독대도 그대로였다. 여름날 저녁이면 시원한 바람을 쐬기도 하고 저기 위에 서서 주말이면 엄마 아빠가 언제 오시나 하염없이 기다렸던 곳... 지금도 내가 그 위에 서서 누군가 사랑하는 이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상상을 해 보았다. 나는 사랑하는 아이들을, 남편을 늘 기다리고 ... 예수님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시리라.

성모당에 도착하니 정말 아름답고 평온하고 아늑했다. 또 다시 비가 약간씩 흩뿌리기 시작하여 신부님께서 동굴 안에 들어와서 미사해도 된다고 하셨다. 동굴 안 신부님 바로 뒤쪽에서 온 몸과 마음으로 일치의 미사를 드리는 은총을 누렸다. 성모당에 가는데 걸린 한 시간, 그 자체가 주님과 함께 한 길이었으며 도시 속의 광야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터에서도 내가 주인이 아니며 주님이 주인이시다. 나의 위치가 위가 아니라 왼쪽 옆이라는 생각을 다시 떠 올리니 우리 약국에서 일하는 이들의 어려움도 보이고 이해되며 모든 곳 모든 것에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조용한 곳 혼자 머무는 곳에서만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바쁜 일터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어디에서나 주님을 만날 수 있음에, 노력할 수 있게 됨에 참으로 감사드린다. “네가 내 안에 머물려고 노력할 때 바로 그곳이 너의 광야이다.” 라는 말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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