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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 성지 순례를 다녀와서..... (오륜대 순교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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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emma 댓글 0건 조회 6,094회 작성일 09-10-2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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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40분, 나름대로 성지순례를 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동안 해오던 9일기도를 아침에 끝내면서 집을 나섰다. 걷는 것을 싫어하고 계속 자동차를 이용해 오던 나는 도심 속을 걸어야 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지만, 이것 또한 작은 순교라 생각했다. 바쁘게 지하철에 몸을 싣고 묵주알을 돌리면서. ‘성모님 오늘 걸어가는 순례의 길 속에서 주님을 느낄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하고 기도드렸다. 팔찌묵주를 돌리며 중얼거리는 내 모습에 마주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었지만, 요즘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듯한 내 모습이 조금은 부끄럽지만...

동래 온천역에 도착, 온천천으로 내려갔다. 썩은 하천을 깨끗이 정화하여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개발한 온천천, 그리 먼곳도 아니면서 한번도 와보지 못한 이곳을 성지순례의 길에 와보게 되서 한편으로는 기뻤다.아주 길게 이어지는 하천을 따라 걸으면서, 정말 인간의 힘이 무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만하지 않고 올바른 의식만 있다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는 정말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맑은 물과 하늘거리는 들꽃들, 잘 정리 되어진 돌층계, 자전거도로, 농구대등등...그리고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엄마, 자전거 타는 아저씨, 조깅하는 노부부, 앉아서 담소 나누는 아낙네들, 이곳은 정말 여유롭고 한가로운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나도 이곳에 잠시 머물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하천을 따라 걷다가 도로 위로 올라왔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 바쁘게 걸어가는 행인들, 높고 낮은 빌딩들, 파헤쳐진 보도블럭, 이곳은 또 다른 우리들의 일상이며 삶의 현장 이었다. 뜨거운 햇빛과 도로위의 먼지들 때문에 들고 간 양산을 받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피땀을 흘리며 수십리, 수백리를 걸어갔을 순교자들을 생각하면 이것쯤이야.... 땀이 흐른다. 잘 걷지 않는 탓에 허리와 발바닥이 아프고 힘이 쭉 빠진다. 전에, 어떤 분이 도심을 몇 시간씩 걸어 다니며 묵상과 묵주기도를 하신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때에는 건강에도 안 좋을 텐데 매연속에 왜 걷느냐고 의아했었는데, 내가 이렇게 걷게 될 줄이야.....

한 시간 남짓 걸어 순교자 기념관에 도착했다. 미리 와 있던 수산나씨를 만났다. 침묵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우리는 눈인사를 나누며 말을 아꼈다. 이곳 순교자 박물관은 순교자들의 유물과 유품 박해사 자료 등을 소장 전시하고 있으며 8명의 부산의 순교자들의 유해도 이곳에 이장 되어있다. 낡은듯한 성당 안에서 잠시 묵상을 하고 나왔다. 성당앞에는 김대건 신부님이 타고 갔다는 작은 모형 배, 그리고 순교자들을 참수했던 돌 형구가 놓여있다, 옛날에는 어떻게 저런 것을 타고 바다를 건너고, 사람들을 저런 도구로 죽일 수 있었을까, 죽을 때의 처참함을 상상해 보려 하지만 나는 그 처참함이나 아픔들을 정말 모른다. 목숨바쳐 죽을일이라곤 없는 현세에 감히그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말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뒷산의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끝까지 침묵하셨던 예수님을 떠올려 보았다. 정말 바보같다. 나 같으면 수도 없이 소리 지르고 결백을 주장했겠지... 나는 자존심 상하고 모욕받을 때가 가장 참기 힘들다. 침묵,이것을 예수님께 배워야 한다, 그리고 잘 참아낼 수 있을때, 이것이 나의 순교가 되리라. 혼자만의 도보 성지순례, 처음에는 못 할 것 같았지만, 나에게는 의미있는 하루였다. 이런 시간은 갖게 해주신 수녀님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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