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 소식

본문 바로가기

동반자 소개 동반자 소식 동반자 사진 동반자 지역별모임

안녕하세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운님 댓글 4건 조회 6,350회 작성일 09-12-20 21:42

본문

루시아 수녀님의 부탁을 받고 쑥스러워서 거절하고 싶엇는데..약속이라서 ..

저는 작년 1월에 유방암3기 진단을 받고 수술후 항암과 방사선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가 올해 8월에 재발이 되어 다시 수술을 하고 지금은 남편과 세 딸아이를 대구에 버리고 안계에 와서 시부모님과 셋이 살고있습니다.

쉬던중 건강보험 공단에서 암투병 수기를 모집한다길래 몇자 적어보냈더니 우수상이라며 상금을 5십만원이나 주네요..근데 그보다 훨~많이 썼어요..완전 적자죠..ㅋㅋ

2008년 11월1일

새롭게 일을 시작하게 된 나는 넘치는 의욕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세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도, 맏며느리로서의 자리도,실직한 남편대신 떠맡은 가장이라는 자리도 모두 지켜야 했기 때문에 늘 시간에 쫓기며 사는 쳇바퀴속의 다람쥐 꼴이었다.

164센티의 키의 55kg의 몸무게

흔히 말하는 먹어도 살 안찌는 체질이라고 나름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으나 사실 나는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 중 의 하나다 .

육식이나 술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고 저녁 늦게라도 혼자 학교 운동장을 두 시간 정도 돌았으며 집에서 티비를 봐도 그냥 보는 법이 없이 늘 스트레칭을 하면서 보내곤 했다 .

건강하나만은 어느 누구한테도 빠지지 않는 자신감도 있었다.

11월8일더 이상 미를 수 없는 생애 전환기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까운 여성병원을 갔다.

접수를 하고 혈액 검사도 하고 심전도도 하고 유방X선 촬영을 하러갔다.

생전 처음으로 해보는 검사라서 멋도 모르고 옷을 갈아입고 들어갔더니 생각도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계 속에 가슴을 밀어 넣어야 하는데 가슴의 크기가 작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뒤에서 밀고 꼼짝 하지 마라는 지시에 기계에 뼈가 맞닿아 눈물이 나도록 아팠다.

위에서 내려온 기계가 가슴을 꽉 눌리는데 처음으로 겪어보는 통증이라서 황망하고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입에서는 비명이 절로 나왔다.

겨우 한쪽은 마쳤지만 다른 한쪽도 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몸을 뒤로 뺐다가 촬영하시는 선생님의 불호령에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마치고 나왔지만 더 큰 난관이 있었다.

검사를 마치고 바로 일을 하러 가야했기 때문에 수면 내시경이 아니고 일반 내시경을 신청하였다. 검사대에 조형제를 마시고 누웠더니 긴관이 들어가는데 (아마 해 보신 분들은 아시리라!!)옆으로 누워 그릇을 받쳐놓은 입과 코와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분비물이 흘러나왔고 계속되는 구역질은 진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검사를 아픈 기억 속에 마치고 남편을 원망하며 바가지를 긁었다.

‘당신 때문에 죽다가 살아왔다. 나처럼 열심히 운동하고 채식하는 사람은 걱정 없다면서..’

사실 남편은 4월달 부터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볼 때마다 얘기했지만 난 괜찮다며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었다.

일주일후면 결과가 나오고 2주 후면 집으로 결과 통보가 온 다 길래 남편 앞에 ‘이상무’라는 결과지를 자신 있게 내 놓을 속셈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흘이 지나자 병원에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석회가 있어 유방초음파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약간 두렵긴 했지만 누구나 다 하는 검사인줄 알았다. 한참을 보시던 선생님께서 조직검사를 하신다면서 아직 맘에 준비도 안 된 내게 마취를 하고 시술을 하셨다.

그런데 나는 동양 사람들에게 많은 치밀 유방이어서 주사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아 가슴을 이리저리 누르는데 그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겨우 검사를 마쳤는데 선생님은 땀으로 범벅이 됐고 난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스른 다음 선생님으로부터 유방암 의심 소견을 듣고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모를 만큼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은 하루가 일 년 같은 긴긴 기다림이었다.

일주일후 결과를 보러 가는데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고 만약에 암이라면 그냥 혼자 조용히 해결하고 싶었다.

예상대로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준비하러 대학병원을 갔다.

12월초에 수술날짜를 받아줬지만 난 너무 어리석었다.

12월에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수술을 1월로 미뤄달라고 했다. 담당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지만 난 그렇게 결정을 했다.

1월 3일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 한 달 반 동안 아침 일곱시에 집에서 나와 밤 11시까지 죽어라 일을 했다.

암이란 사실을 잊고 싶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동정어린 시선도 받기 싫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미친 듯이 보낼때 오른쪽 겨드랑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겨드랑이 사이에 메추리알을 끼워 놓은 것 같은 혹도 생겼다.

12월 중반 수술 준비 검사를 하러 병원에 가서 겨드랑이 초음파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됐다.

림프절에 전이가 된 것이다.

암에 다해서 너무나 무지한 탓에 오른팔을 쓰면 안된다는 걸 몰랐다. 무엇보다 수술이 빨리 필요한 것도 몰랐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시간을 보내고 1월2일 입원을 해서 3일 오후2시에 수술실로 향했다.

세 시간에 걸친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 왔을 때 ‘이제 다 끝났구나 ’ 하는 마음에 안도가 되어 기분 좋게 식구들을 맞았다.

하루가 지나자 링거를 빼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으나 림프절 절제로 인해 오른팔에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팔을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가 없었고 아침마다 간호사들이 와서 팔을 머리위로 올리고 등뒤로 넘기라고 시켰지만 전혀 따라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고 12일 만에 퇴원을 하고 이제 앞으로 관리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수술은 이제 시작일뿐이었다.

3주후 외래 진료에서 유방암 3기말이라는 정확한 진단명을 듣고 혈액 종양내과로 갔다.

앞으로 항암 치료를 8차, 방사선 치료를 32회 해야 하며 호르몬에 HER-2수용체가 있어 허셉틴이라는 재발 방지 항암 치료를 할 거라는 앞으로의 과정을 설명 듣고 1차 항암에 들어갔다.

빨간색 항암제를 2시간에 걸쳐 맞고 집으로 돌아와 자리를 펴고 누워 하루가 지나자 구토가 시작되었다. 진토제를 받아왔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사흘을 꼬박 굶고 탈진을 해서 가까운 병원에서 링거를 맞으며 겨우 버텼다.

보름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속은 진정이 되었는데 입안의 점막이 헐어서 양념이 들어간 음식을 먹을 수 가 없었다.

또 항암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미장원에 가서 담담하게 머리를 밀고 이쁜 비니를 쓰고 왔지만 아이들과 눈이 마주 쳤을 때 놀라는 모습에 서로가 할말을 잃었고 애써 외면하며 눈물을 참아보기도 했다.

3주 만 에 2차 항암,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4차까지 마치고 5차부터는

두 번째 항암이 들어갔다.

처음 네 번이 구토 때문에 힘이 들었다면 5차부터 8차까지는 뼈마디가 쑤시고 아픈 통증이 몰려와서 병원에서 처방받은 진통제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서 먹는 진통제를 잠시 늦추기라도 하면 저절로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아팠다. 그 와중에 다행히 백혈구 수치는 잘 나오는 편이어서 제 날짜에 무사히 마칠 수 가 있었다.

항암때는 주사만 맞고 집에 오면 됐지만 방사선은 매일 치료를 해야 되기 때문에 병원근처의 요양병원에 입원을 했다.

항암에 비하면 육체적인 고통이 없는 것만으로도 한결 수월했다.

2008년 8월 30일. 비록 너무 고가인 허셉틴을 맞지 못한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모든 치료 과정을 마치고 집으로 복귀했다.

그동안 남편과 아이들은 나 못지않게 힘든 날을 보냈다.

아이들 아침을 다 챙겨 먹여 학교에 보내야 했고 아픈 아내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었던 것을 마음 아파한 남편도, 기특하게 엄마의 빈자리에도 잘 지내준 아이들도 힘껏 껴안아 주고 싶었지만 8개월의 공백은 약간 서먹함을 남기고 말았다.

일년 육개월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투병중이다. 지난 7월 정기 검진 중에 또 이상 소견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8월12일 유방 전절제술을 받고 대구의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왔다.

남편과 아이들을 떼어놓고 시댁으로 내려와 시부모님과 같이 생활을 하며 매일 등산을 가고 식이요법을 철저히 하며 지내고 있다.

그 덕분인지 그동안 지독한 불면증에 애를 먹었는데 맑은 공기와 적당한 운동으로 편안히 밤을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다.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가던 내게 생애 전환기 진단 이란게 없었더라면 아마 아직도 난 내 몸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 줄도 모르고 오늘도 계속 달리고만 있을 것이다.

그길의 끝이 어디인지는 생각도 않은 채..

오전에 한 시간을 산을 타고 올라간 정상에서 난 이제 먼 미래를 본다.

세 아이와 남편과 같이 모여 웃으며 오늘을 이야기 할 날을..

댓글목록

천사님의 댓글

천사 작성일

  자매님, 오늘(2010.1.4) 몇년만에 펑펑 눈이 내리네요.
눈이 내리면 그냥 설레이고 마냥 행복하지요.
금년 한 해 주님 사랑안에서 설레임과 행복의 기쁨이 충만하실 길 기도드립니다.
밝은 웃음 늘 간직하시고 행복하십시요.

스마일님의 댓글

스마일 작성일

  선산 요양원에서 피정할때 나눔을 통해 투병 소식듣고 내내 마음 안에 자리했던 고운님~
반갑고 기쁘네요. 당첨이라는 기쁜 소식에 고맙고
잘 이겨내고 계시는 것 같은 소식에 감사합니다.
세 아이와 남편과 함께 환하게 웃을 그날을 위해 잘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동반자 전체 모임에서 뵈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사랑합니다.
 

마리도미님의 댓글

마리도미 작성일

  자매님의 투병기를 나눠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분명히 좋은 소식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2010은 희망의 해가 되시길 바람 열심운동하시고 마음편하게 자연안에 머무르시길 바랍니다.

비비안나님의 댓글

비비안나 작성일

  일월 피정때 화사하게 웃고있던 자매님의 얼굴이 생각남니다.언제 어느때라도 주님과 함께하시기에 그런 미소가 있었군요.행복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