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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 필리핀의 태풍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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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프랑소와즈 작성일2009-10-03 조회4,920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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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랑하올 수녀님들과 이 곳을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

한국 뉴스를 통해 필리핀의 태풍피해 소식을 접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므로

이 곳 소식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이제 이 곳에 온 지 1년이 지났어요. 지금 저희 4명은 무사히 잘 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지난 9월 말 태풍 켓사나로 인해 폭우가 쏟아져

40년 만에 최악의 홍수가 발생했답니다.

이 곳 마닐라에서만 300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어요.

(한국 젊은 학생 1명도 물 속 전기감전으로 ...)

그 날 아네스 수녀님은 이 곳 eapi생활을 끝내고 다음날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이끌라 기숙사에 살고 있는 한국 수녀님들을

짧게 방문하기 위해 저화 함께 집을 나섰답니다.

9월 내내 비가 왔으므로 그 날도 곧 그치리라 예상하면서 빨리 돌아오리라 생각하며

길을 나섰지요,

좋은 수녀님들을 아침 일찍 잠깐 만난 후 아무리 기다려도 비가 그치지 않아

더 많이 오기 전 집에 가야겠다 싶어 오전 11시쯤 그 곳에서 출발했답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애용하는 지프니도, 트라이시클도 잡기가 무척 힘들었고

긴긴 시간 기다림 끝에 트라이시클을 타고 어느 지점까지 겨우 가서

(이미 폭우 속에서 옷들은 물에 흠뻑 젖은 상태였답니다.)

기사가 더이상 갈 수 없다고 해서 내려 다행스럽게도 택시를 탔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아테네오 대학 근처까지 왔는데 차들이 꿈쩍을 하지 않더라구요.

그 때만 해도 우리는 너무 뭘 몰랐어요. 무슨 사고가 났나보다 싶었지요.

할 수 없이 걸어갈 작정으로 택시에서 내렸어요.

아테네오 대학이 미리암 대학과 붙어 있어 미리암 대학을 통해서도 eapi로 갈 수 있으므로

우리는 미리암 대학으로 들어갔답니다.

그 날 수위 아저씨가 왜 미리암 대학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었는지 모르겠어요.

차들은 못 들어오게 막으면서 말이에요.

그 때만 해도 물이 발목까지 밖에 오지 않아 빨리 걸어가면 되겠다고 여겼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물이 빠른 속도로 몸을 휘감으며 올라왔습니다.

게다가 길이 흙탕물에 잠기니 아는 길도 낯설게 느껴졌고

좀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눈에 보였고 그 곳까지 헤쳐서 갔는데

그 곳으로 가는 길에 물이 벌써 허리까지 왔는데

제가 아는 그 길에는 기둥들이 여러개가 서 있었는데

막상 거기에 도착해보니 기둥들도 다 물에 잠긴 상태이지 뭐에요.

그리고 이미 우리는 빠른 물살을 헤치면서 한참 걸었고

다리에 뭐가 걸리는 것이 하도 많아

신발을 잃지 않기 위해 발에 힘을 주었는데다

아침 출발하면서부터 젖은 옷을 입고 있었으므로

많이 지친 상태였답니다.

휴대폰이 든 가방은 물에 젖지 않기 위해 목에 둘둘 감아두었고

그 물에 잠긴 길에 도착해 기둥만 붙들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답니다.

물살이 빨라 더 이상 걷다가는 물에 휩쓸려 날아가 어딘가에 부딪힐 것만 같았고

더 이상 빠른 물 속을 걸을 힘이 없었어요.

이미 꺾일대로 꺾여 쓸 수가 없는 제 우산은 물에 떠내려갔습니다.

우산을 잡을 손도 없었어요.

저는 아네스 수녀님에게 "기둥 꼭 붙들어욧!!!" 하고 소리치고

다시 이어서 "사람 살려욧!" 외쳤답니다.

그 지경이 되고보니 그 쉬운 "헬프미"도 생각이 안 나더라구요.

그저 한국말로 구조를 요쳥했답니다.

아...사람이 물에 떠내려가 죽는다는게 이런거구나 싶었어요.

그 때만 해도 사람들이 눈에 안 보였는데

저 멀리서 건장한 학교 가이드 두 명이 우리를 보았고

또 다른 한 쪽에서 젊은 청년 3명이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왔답니다.

그들이 오는 그 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요.

결국 젊은 청년 3명은 그들과 우리 사이에 흐르는 물살 때문에 오지 못했고

가이드 2명은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구해서 대학 밖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역시나....키가 크고 몸집이 큰 사람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가 쉽겠어요.

아네스 수녀님과 저는 달랑달랑 매달려 빠져나가는 꼴이었답니다.

그리고 대학 밖으로 빠져나오고보니

차들이 정체된 이유가 길이 물에 잠긴 탓이었고

사람들은 길의 벽쪽으로 붙어서서 벽을 붙잡고 첨벙 첨벙 걸어가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물에 잠긴 길 한가운데서 물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더라구요. 그 광경을 보니 정말 머리가 어지러웠어요.

아테네오 대학은 높은 지대에 있었으므로

대학 내는 물이 많이 차지 않아 집에 무사히 돌아왔어요.

30분 올 거리를 4시간 만에 와서 오후 3시쯤에 도착했답니다.

우리가 머무는 기숙 건물은 이미 전기가 나간 상태였으므로

찬물로 샤워하고 꿍쳐둔 컵라면을 급하게 먹고 습기찬 곳에 누워 잠을 자고 나니

몸 상태가 영 아니었어요. 함께 생활하는 예수성심전교회 스테파니아 수녀님이

저보고 눈이 풀렸다고 표현하더라구요.

그 스테파니아 수녀님이

전기가 들어오는 방에 가서 우리를 눕게 하고 뜸과 뜨거운 수건 찜질을 해주고

손을 따주고 발물을 하게 한 다음

그 수녀님이 딱 하나 가지고 있던 우황청심원을 나누어 먹게 해주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몸이 빨리 회복했답니다.

그 때까지 아네스 수녀님은 상태가 저보다 괜찮아 보였고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짐을 쌌으나

다음날 수녀님이 이동하는 그 곳이 물에 잠겨 이사를 포기하고 그 다음날 이동했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데레사 수녀님이 바기오에서 돌아와서

원래 수녀님이 머물던 빠랴냐케로 돌아가는 날이어서

새벽에 이레네 수녀님과 제가 마중을 갔고

저는 데레사 수녀님 짐을 다 싣고 택시를 함께 타고 빠랴냐케에 가서

전기가 들어오는 수녀님 방에서 이틀을 쉬었답니다.

이레네 수녀님은 다시 돌아와서

아네스 수녀님이 CPE코스를 할 성토머스 대학 근처 기숙사로

아네스 수녀님과 함께 이동하셨어요.

그리고 아네스 수녀님은 짐을 다 풀고 몸살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남은 기적같은 이야기에요.

어떤 한국 수녀님은 그 날 사람들이 시체들, 차들과 함께 물에 떠내려가는 아수라장 현장을

다 목격한 이후로 그 기억 때문에 힘들어한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과 가족을 잃고 학교 같은 수재민 피난소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이 곳의 우리들도 안 입는 옷들과 물품을 수집해서 보내주었고

다른 한국 수녀회 선교사 수녀님들은 슬리퍼 300켤레. 음료수 300개 등 장을 봐서

그들을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 추석이어서 예수 성심전교 수녀회에서

근처 한국 수녀님들을 다 초대해서 한국 미사를 봉헌하고 떡국을 나눠먹기로 계획했었는데 ..

어제 그 수녀회에서는 성당 꽂꽂이도 하고 한국 음식도 준비했었는데 ....

오늘 아침 또 다시 초강력 태풍 파르마가 시작되어서

(태풍의 이름들은 다들 예쁘장하긴 합니다만..)

아침에 급히 계획을 취소하고 다들 꼼짝 않고 집에 앉아 있어요. ㅜㅜ

요즘 필리핀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사모아 등

지진과 쓰나미 같은 재난으로 몸살을 겪고 있어

eapi 모든 수도자들과 사제들은 미사 때 꼭 꼭 기억하고 그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안부를 물어보기도 합니다.

아네스 수녀님에게 그 날 물속에서도 어쩜 그리 조용할 수 있었느냐고 후에 제가 물어보니...

너무 놀라면 말이 안 나온다고 그러대요. ㅋㅋㅋ

아네스 수녀님이 그 날 또 느꼈답니다.

우리가 빨리 죽을 목숨이 아닌 것 같다고.....ㅎㅎㅎ

모두가 우리에게 그 날 살았던 것은 "기적"이라고 이야기한답니다.

아네스 수녀님이 이동할 그 곳에 대해서 거기 살았던 다른 한국 수녀님이

비가 오면 허리까지 물이 차는게 일상이라면서...

물이 워낙 더럽고 병균이 많아서 무좀에도 걸렸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었어요.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물 속을 걷게 되면

진짜 아네스 수녀님 발이 무좀 걸리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무좀이 웬말입니까. 물이 차면 더러온 물과 병균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살고 죽고가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비가 올 때는 나가고 싶지 않을만큼

비를 두려워하고 있어요.

선교를 위해 영어를 공부할 목적으로 이 곳에 왔지만

영어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체험하고 있답니다.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희 뿐만 아니라 이번 재난으로 피해입은 필리핀과 외국의 많은 분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 긴 이야기를 글로써 전하게 됨이 안타깝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을 만나 이 긴 이야기를 하니

그 전에 전화로 했을 때는 안 믿는 눈치더니

(데레사 수녀님이 살던 바기오는 이렇게 물이 차는 일이 없대요.)

저보고

" 프랑...그런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를 낮춰서 힘빠진 목소리로 해야지 그렇게 평소와

똑같은 들뜬 목소리로 "수녀님수녀님 세상에세상에 우리가 죽다가 살았어예" 하니

그걸 누가 믿겠노??" 하지 뭐에요. ㅎㅎㅎ

본원 식당에 앉아 이 이야기를 말로 하면 훨씬 실감나게....우리 수녀님들을 웃게 해 드리면서

할 수 있는데.....eapi로 돌와와서 이 이야기를 영어로 떠듬떠듬할 수 밖에 없을 때의

제 속타는 모습을....우리 수녀님들은 상상이 가실겁니다.ㅋㅋ

추석 잘 보내시고 건강하세요. ^^

-필리핀에서 프랑소와즈 수녀 드림 -

댓글목록

동글레미님의 댓글

동글레미 작성일

  ㅎㅎㅎㅎ 저는 이 이야기를  바기오에서 전화로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별로 걱정을 안했답니다. 수녀님의 목소리는 죽을뻔한 목소리가 아니라
그냥 늘 프랑소와즈 수녀님의 목소리 다들 아시죠? 덜뜬 목소리.....
그래서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수녀님이 얼마나 놀랐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픈지 헤아리지 못하고 걱정의 말이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답니다.
지금 사실 두고두고 미안해서 얼굴을 못들겠습니다. 암튼 죽을뻔한 이야기를 웃기게 말하는 수녀님땜에 부끄러운 언니가 되었다는 뒷담화를 전해 드립니다.

마리도미님의 댓글

마리도미 작성일

  아네스, 프랑수녀님 많이 놀랐겠어요.
무사하다니 아직 하느님께서 하실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것 같아요?
마음 안정되길 바래요. 한국오면 이야기 해 주세요....

예, 주님!님의 댓글

예, 주님! 작성일

  태풍 무서운 줄 정말 모르고 살았네. 별일 없겠지 하며 안부도 묻지 못한게 너무 미안하네요. 하느님께 감사!  프랑, 효주 수녀님!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저력있는 자랑스러운 DC수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