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 2021년 제107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교황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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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엠마오 소화 댓글 0건 조회 2,631회 작성일 21-09-08 15:48본문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1년 제107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
(2021년 9월 26일)
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하여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 제 마음 속 가장 깊은 걱정과 희망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보건 위기가 지난 뒤에 최악의 반응은 열광적 소비주의와 새로운 형태의 이기적 자기 보호에 더욱더 빠져드는 것입니다. 부디 더 이상 ‘다른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35항).
이러한 까닭에, 저는 올해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의 주제를 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하여라고 정하여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여정을 위한 분명한 지평을 보여 주고자 하였습니다.
‘우리’의 역사
이 지평은 하느님의 창조 계획에서 이미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창세 1,27-28).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서로 다르지만 상호 보완하도록 창조하시며, 세세대대로 더욱더 번성하도록 정해진 ‘우리’를 만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모습,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 당신 모습, 다양성 안에서 친교를 이루는 모습으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고 그분에게서 멀어졌을 때에 하느님께서는 개개인에게가 아니라 한 백성인 ‘우리’에게 당신 자비로 화해의 길을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는 온 인류 가족, 곧 만백성을 받아들이도록 정해졌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묵시 21,3).
그래서 구원 역사에는 그 시작에도 ‘우리’가 있고 그 마침에도 ‘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어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요한 17,21) 해 주신 그리스도의 신비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하느님께서 바라셨던 이 ‘우리’는 무너지고 산산조각 나고 상처 입고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현재의 세계적 유행병 상황처럼 큰 위기가 닥치는 순간에 한층 더 분명해집니다. 더 넓은 세상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우리가 말하는 ‘우리’는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 형태(「모든 형제들」, 11항 참조) 그리고 철저한 개인주의(「모든 형제들」, 105항 참조)로 무너지고 갈라지고 있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다른 이들로 치부되는 이들, 곧 외국인들, 이주민들, 소외된 이들, 실존적 변방에서 사는 이들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바로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고 함께 일하라고 부름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우리를 갈라놓는 장벽이 없어질 것이고, 더 이상 다른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품어 안는 단 하나의 ‘우리’가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빌려 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하여 함께 걸어 나가자고 먼저 가톨릭 신자들에게 그리고 동시에 이 세상의 모든 이에게도 호소하고자 합니다.
더욱더 보편된 교회
가톨릭 교회의 모든 지체에게 이 호소는 우리의 ‘보편된’ 존재에 훨씬 더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의미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에페소 공동체에 다음과 같이 상기시켰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에페 4,4-5).
사실 교회의 보편성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뜻과 은총에 따라(마태 28,20 참조) 모든 시대에서 받아들여지고 드러나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모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양성 안에서 친교를 이루며, 몰개성적인 획일화를 강요하지 않고 다름들이 화합을 이루게 해 주십니다. 다양한 외국인들, 이주민들, 난민들과의 만남 그리고 이러한 만남으로 생겨날 수 있는 문화 간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교회로서 성장하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세례 받은 모든 이는, 어디에 있더라도 마땅히 지역 교회 공동체 그리고 하나인 교회를 이루는 지체이고, 한 지붕 아래 사는 식구이며, 한 가정의 일원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일하면서 더욱더 너른 품으로 받아들이는 교회를 이루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교회가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다음과 같은 사명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7-8).
오늘날 교회는 편견이나 두려움을 갖지 않고 개종시키려 하지 않으면서, 모든 실존적 변방의 거리로 나가 상처를 치유해 주고 방황하는 이들을 찾아 나서며, 모든 이를 감싸 안기 위하여 교회의 그늘막을 넓힐 준비를 하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그러한 실존적 변방에 사는 이들 가운데, 우리는 수많은 이주민들과 난민들, 실향민들,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이 드러나고 당신의 구원이 선포되기를 바라십니다. “오늘날 이주민의 유입은 새로운 선교의 ‘영역’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메시지를 가정에 선포하고 다른 종교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깊은 존중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특별한 기회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다른 교파와 종교의 이주민들과 난민들과의 만남은, 개방적이고 풍성한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의 성장을 위한 비옥한 토양이 됩니다”(유럽주교회의연합[CCEE]의 이민 사목 각국 지부장에게 한 연설, 2017.9.22.).
더욱더 품어 안는 세상
또한 저는 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한 여정을 함께 이어나가자고 모든 이에게 호소합니다. 이는 인류 가족을 새롭게 하고 정의와 평화의 미래를 건설하며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보장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다양성과 문화 교류로 풍성해져 ‘다채로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화합과 평화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사도행전의 한 장면에서 언제나 큰 감동을 받습니다. 이 장면은, 오순절에 교회의 ‘세례’의 날, 곧 성령 강림이 있고 나서 바로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이가 구원의 선포를 듣던 날입니다.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다와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 주민,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그리고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사도 2,9-11)
이는 새로운 예루살렘의 이상향으로(이사 60; 묵시 21,3 참조), 이곳에서 모든 민족들이 평화와 화합 속에서 하나 되어 하느님의 선하심과 창조의 경이로움을 기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려면 우리를 갈라놓는 모든 장벽을 허물고, 우리가 긴밀히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만남의 문화를 증진하는 다리를 건설하는 데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날 이주는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저마다 받은 다양한 선물들로 우리 자신을 풍성하게 하는 기회를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염원한다면, 우리는 경계들을 만남을 위한 특별한 자리, 곧 더욱더 넓은 ‘우리’가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자리로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을 보호하고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라고 우리에게 맡기신 선물을 잘 활용하도록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초대합니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루카 19,12-13). 주님께서도 우리의 일에 대한 셈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우리 공동의 집에 대한 올바른 돌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더 넓고 더욱더 큰 공동의 책임을 갖는 ‘우리’가 되어, 지금 세상에서 하는 모든 선한 일이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임을 깊이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욱 지속가능하고 균형 잡힌 포괄적 발전을 향하여 나아가면서도,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를 돌보는 개인적 집단적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곧 내국인과 외국인, 주민과 외지인을 구별하지 않으려는 노력입니다. 이는 우리가 공동으로 지니는 보화이기 때문에 이 보화를 돌보고 혜택을 받는 것에서 그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꿈의 시작
요엘 예언자는 메시아적 미래는 성령의 감도를 받은 꿈과 환시의 때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주리라. 그리하여 너희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요엘 3,1).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한 인류 가족으로서, 같은 여정의 길동무로서, 우리 공동의 집인 이 땅의 자녀로서, 모든 이가 형제자매로서 함께 꿈꾸라고 부름받습니다(「모든 형제들」, 8항 참조).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저희가
잃어버린 이들을 되찾을 때,
소외된 이들, 거부당한 이들, 버려진 이들을
받아들여 더욱더 넓은 ‘우리’가 될 때,
하늘에 큰 기쁨이 있다고
당신의 아드님 예수님께 배웠나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과
선의를 지닌 모든 이가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청하나이다.
추방당한 이들을
공동체와 교회인 ‘우리’ 안으로 모아들이는
환대와 도움의 손길에 강복하시어
이 땅이
아버지께서 친히 창조하신 본연의 모습 그대로
모든 형제자매에게 공동의 집이 되게 하소서. 아멘.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1년 5월 3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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