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서로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고 즐거운 이 세상여행이 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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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by 댓글 1건 조회 4,463회 작성일 16-04-26 22:16본문
이곳에는 상처환자들이 많다.
우리 센터는 브릴리의 궤양환자를 치료하는 센터로 시작을 했지만 지금은 상처를 치료하는 병원이라고 할만큰 온갖형태의 상처환자들이 전국에서 온다.
그래서 브릴리의 궤양 환자외에도 일반 환자들의 상처치료가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평균을 내면 매일 50에서 60명 사이에 이른다.
상처치료는 경우에 따라서 매일, 이틀에 한번, 그리고 각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
이곳에서 만난 브릴리의 궤양 환자외에도 여러 형태의 감염,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많이 없지만, 이곳에는 혈구의 이상으로 반달형 적혈구를 가진 사람이 많아 혈구 파괴가 많이 되고, 그
렇다 보니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특히 신체 말단 부분에 많은 상처가 생기기 쉽고 상처가 나면 쉽게 낫지를 않는다. 이 외에도 당뇨병, 패혈증, 급성 감염으로 어쩔수 없이 다리를 절단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 병원에도 브릴리 궤양으로 인해 상처가 오래 지속되다보니 뼈에 감염이 되어 골수염을 앓는 사람이 많다.
뼈에 감염이 된 경우 정말 낫기가 어럽다. 벌써 3년 넘게 입원한 환자들 중에서 대부분이 골수염으로 상처가 낫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침대에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가능하면 신체의 절단 없이 낫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어쩔수 없이 절단이 최선책인경우도 결정을 내리려면 쉽지가 않다.
절단을 하고 의족을 하는데 이 의족값이 엄청 비싸다.
의족을 하고 그리고 적응하기위한 물리치료, 입원비까지 합치면, 거의 600 000 프랑세파(1 200 000 만원) 정도가 된다.
한번쯤은 외부의 도움으로 해 준다고 해도 의족은 원래의 다리처럼 영구하지가 않다.
사용하다 보면 부러지기고 하고 , 또 언젠가는 마모가 되어 또 교체를 해야하고, 특히 자라는 아이들의 경우는 교체가 필수적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3년 4년 넘게 상처치료를 하면서 ( 10년 . 20년 이상 상처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병원만 전전하는 환자들이 있다. )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절단하고 한국의 보조를 받아 보조기를 해주면, 직업을 위해 어떤 것을 배울수도 있고, 적어도 자신의 미래를 독립적으로 살아갈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현실안에서 그리 단순하지가 않았다. 의족을 하기위해서는 이곳에서 400 킬로 미터 떨어진 보누아 까지 가야하고, 맞추러가고 또 찾으러가고 입원해야하고... 보조기 값에외에도 교통비 숙박비가 이 사람들에게는 만만치가 않다.
2014년 피르메와 세자르가 2개월 반동안 서울의지에서 장애자 신발과 여러형태의 보조기 연수를 해서 이곳에서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 장애자용 신발과 보조기를 이용하니 물리치료효과과 훨씬 나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병원이 알려지면서 조금씩 우리센터에서 물리치료와 보조기 그리고 의족에 대해서 많은 문의가 온다. 이런 이 나라의 상황과 현실적인 요구에 의해 의족을 위해 세자를 한국에 연수를 보내기로 했다.
연수할곳을 찾는 곳도 쉬지가 않다. 교육비가 너무 비싸고, 그리고 언어의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관구의 도움과 이곳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가브리엘 수녀님의 적극적인 도움과 지지로 다시금 한국 연수를 계획하게 되었다.
쉽지않은 일 이지만 이런 모든 어려움을 무릎쓰고 감히 가겠다고 용기있게 말하는 세자르에게 고마웠다.
얼마전 한국 갔다온 사람들과 올해 연수를 갈 사람들을 위해서 평가 및 정보교환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용기있는 척 한 세자르도 처음 출국전에 말라리아와 설사등...
신경을 많이 쓴 탓에 가기전 아팠다. 피르메는 “ 일단은 비행기를 탈수있어야 되, 네가 못가면 내가 누구랑 이야기를 하냐...”며 걱정한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걱정하고 또 마음조이면서 탄 비행기, 그러나 내리자마자 아오스딩형제님 이름만 보여주자 즉시 이 사람들을 출구까지 동행해 주었던 비행장의 여직원에서부터 시작해서 한국을 떠날때까지 만났던 모든 분들의 뜨거운 환대와 사랑은 이 사람들 마음에 깊이 남은 것 같다.
다 나열할수 없지만, 잠시 들리면서 만났던 모든 은인들, 수녀회... 그들은 이곳에서 각자 이름대신 자기네들의 추억의 이름으로 부른다.
이름을 외우기는 어려워서 이겠지만, 느낀 마음으로 그들 나름의 이름을 지었단다.
빠빠 아오스딩, 국제적인 엄마. 마망 엠마누엘....... 그리고 식당에서 스쳐가면서 만남을 나눈사람들까지 참 정겹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전철에 늦게 타다가 끼인이야기, 전철을 잘못탄이야기, 그리고 여러 가지 물건이나 구조를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당황했던 이야기들.... 그래서 갔다온 사람들에게는 평가가 되었고 올해 새로 한국 연수를 떠날 사람들에게는 좋은 정보나눔의 기회가 되었다.
나도 이런 계획을 하고 실행을 하기위해서는 참 두렵기도 하고, 참 많은 걱정이 되었다.
이 사람들이 한국가서 상처받지 않을까, 언어가 되지않아 너무 어려움에 처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나의 걱정은 적극적인 한국관구의 후원과 그리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정말로 마음으로 사랑했던 가브리엘 수녀님의 정성어린 배려와 사랑, 그리고 친 자녀 이상으로 아껴주는 아오스딩 형제님과 가족들, 그리고 첫 만남이고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다만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친 가족이상의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 주셨던 한국의 모든 은인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래서 한가지 배움이 있다. 비록 그것이 어슬프고 참 어려운 첫걸음이긴해도, 원천이 사랑이고 목적이 사랑이라면 과정은 사랑일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또 새롭게 연수를 떠나는 세자르와 뚜레선생님, 마시알 간호사의 한국 연수가 그들의 삶의 한자락에 소중한 은총의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작은 한알의 씨앗이 큰 나무가 되고 100 배 그 이상의 열매를 맺듯, 한 순간의 사랑의 체험은 온생을 사랑으로 풍요한 삶을 살수 있는 기회가 됨을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직적접으로 도움을 주신 한국관구, 가브리엘 수녀님과 아오스딩형제님 그리고 한분 한분 이름을 다 나열할수 없지만, 사랑을 나누어주셨던 모든 은인님들,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넘어 이 사람들의 연수를 받아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스쳐가는 작은 시선안에서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를 드린다. 우리가 이 세상이란 여정안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면 행복하고 즐거운 이 세상여행이 되길 기도한다.
부아케에서
프란치스카 수녀
우리 센터는 브릴리의 궤양환자를 치료하는 센터로 시작을 했지만 지금은 상처를 치료하는 병원이라고 할만큰 온갖형태의 상처환자들이 전국에서 온다.
그래서 브릴리의 궤양 환자외에도 일반 환자들의 상처치료가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평균을 내면 매일 50에서 60명 사이에 이른다.
상처치료는 경우에 따라서 매일, 이틀에 한번, 그리고 각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
이곳에서 만난 브릴리의 궤양 환자외에도 여러 형태의 감염,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많이 없지만, 이곳에는 혈구의 이상으로 반달형 적혈구를 가진 사람이 많아 혈구 파괴가 많이 되고, 그
렇다 보니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특히 신체 말단 부분에 많은 상처가 생기기 쉽고 상처가 나면 쉽게 낫지를 않는다. 이 외에도 당뇨병, 패혈증, 급성 감염으로 어쩔수 없이 다리를 절단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 병원에도 브릴리 궤양으로 인해 상처가 오래 지속되다보니 뼈에 감염이 되어 골수염을 앓는 사람이 많다.
뼈에 감염이 된 경우 정말 낫기가 어럽다. 벌써 3년 넘게 입원한 환자들 중에서 대부분이 골수염으로 상처가 낫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침대에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가능하면 신체의 절단 없이 낫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어쩔수 없이 절단이 최선책인경우도 결정을 내리려면 쉽지가 않다.
절단을 하고 의족을 하는데 이 의족값이 엄청 비싸다.
의족을 하고 그리고 적응하기위한 물리치료, 입원비까지 합치면, 거의 600 000 프랑세파(1 200 000 만원) 정도가 된다.
한번쯤은 외부의 도움으로 해 준다고 해도 의족은 원래의 다리처럼 영구하지가 않다.
사용하다 보면 부러지기고 하고 , 또 언젠가는 마모가 되어 또 교체를 해야하고, 특히 자라는 아이들의 경우는 교체가 필수적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3년 4년 넘게 상처치료를 하면서 ( 10년 . 20년 이상 상처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병원만 전전하는 환자들이 있다. )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절단하고 한국의 보조를 받아 보조기를 해주면, 직업을 위해 어떤 것을 배울수도 있고, 적어도 자신의 미래를 독립적으로 살아갈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현실안에서 그리 단순하지가 않았다. 의족을 하기위해서는 이곳에서 400 킬로 미터 떨어진 보누아 까지 가야하고, 맞추러가고 또 찾으러가고 입원해야하고... 보조기 값에외에도 교통비 숙박비가 이 사람들에게는 만만치가 않다.
2014년 피르메와 세자르가 2개월 반동안 서울의지에서 장애자 신발과 여러형태의 보조기 연수를 해서 이곳에서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 장애자용 신발과 보조기를 이용하니 물리치료효과과 훨씬 나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병원이 알려지면서 조금씩 우리센터에서 물리치료와 보조기 그리고 의족에 대해서 많은 문의가 온다. 이런 이 나라의 상황과 현실적인 요구에 의해 의족을 위해 세자를 한국에 연수를 보내기로 했다.
연수할곳을 찾는 곳도 쉬지가 않다. 교육비가 너무 비싸고, 그리고 언어의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관구의 도움과 이곳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가브리엘 수녀님의 적극적인 도움과 지지로 다시금 한국 연수를 계획하게 되었다.
쉽지않은 일 이지만 이런 모든 어려움을 무릎쓰고 감히 가겠다고 용기있게 말하는 세자르에게 고마웠다.
얼마전 한국 갔다온 사람들과 올해 연수를 갈 사람들을 위해서 평가 및 정보교환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용기있는 척 한 세자르도 처음 출국전에 말라리아와 설사등...
신경을 많이 쓴 탓에 가기전 아팠다. 피르메는 “ 일단은 비행기를 탈수있어야 되, 네가 못가면 내가 누구랑 이야기를 하냐...”며 걱정한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걱정하고 또 마음조이면서 탄 비행기, 그러나 내리자마자 아오스딩형제님 이름만 보여주자 즉시 이 사람들을 출구까지 동행해 주었던 비행장의 여직원에서부터 시작해서 한국을 떠날때까지 만났던 모든 분들의 뜨거운 환대와 사랑은 이 사람들 마음에 깊이 남은 것 같다.
다 나열할수 없지만, 잠시 들리면서 만났던 모든 은인들, 수녀회... 그들은 이곳에서 각자 이름대신 자기네들의 추억의 이름으로 부른다.
이름을 외우기는 어려워서 이겠지만, 느낀 마음으로 그들 나름의 이름을 지었단다.
빠빠 아오스딩, 국제적인 엄마. 마망 엠마누엘....... 그리고 식당에서 스쳐가면서 만남을 나눈사람들까지 참 정겹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전철에 늦게 타다가 끼인이야기, 전철을 잘못탄이야기, 그리고 여러 가지 물건이나 구조를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당황했던 이야기들.... 그래서 갔다온 사람들에게는 평가가 되었고 올해 새로 한국 연수를 떠날 사람들에게는 좋은 정보나눔의 기회가 되었다.
나도 이런 계획을 하고 실행을 하기위해서는 참 두렵기도 하고, 참 많은 걱정이 되었다.
이 사람들이 한국가서 상처받지 않을까, 언어가 되지않아 너무 어려움에 처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나의 걱정은 적극적인 한국관구의 후원과 그리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정말로 마음으로 사랑했던 가브리엘 수녀님의 정성어린 배려와 사랑, 그리고 친 자녀 이상으로 아껴주는 아오스딩 형제님과 가족들, 그리고 첫 만남이고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다만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친 가족이상의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 주셨던 한국의 모든 은인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래서 한가지 배움이 있다. 비록 그것이 어슬프고 참 어려운 첫걸음이긴해도, 원천이 사랑이고 목적이 사랑이라면 과정은 사랑일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또 새롭게 연수를 떠나는 세자르와 뚜레선생님, 마시알 간호사의 한국 연수가 그들의 삶의 한자락에 소중한 은총의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작은 한알의 씨앗이 큰 나무가 되고 100 배 그 이상의 열매를 맺듯, 한 순간의 사랑의 체험은 온생을 사랑으로 풍요한 삶을 살수 있는 기회가 됨을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직적접으로 도움을 주신 한국관구, 가브리엘 수녀님과 아오스딩형제님 그리고 한분 한분 이름을 다 나열할수 없지만, 사랑을 나누어주셨던 모든 은인님들,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넘어 이 사람들의 연수를 받아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스쳐가는 작은 시선안에서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를 드린다. 우리가 이 세상이란 여정안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면 행복하고 즐거운 이 세상여행이 되길 기도한다.
부아케에서
프란치스카 수녀
추천19
댓글목록
마리도미님의 댓글
마리도미 작성일
프란치스카 수녀님~~ 그대의 손길은 곧 하느님의 손길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사랑으로 치료되는 모습이 감동입니다.
병원이 인기가 있으니 환자들이 자꾸 늘어나겠어요.
그리고 직원들의 해외연수 경험도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적극 지지합니다.